“전쟁은 이제 곧 끝난다.”
1968년 초, 미국 정부와 군 지휘부는 그렇게 말했습니다.
하지만 그 해 음력 설, 베트남의 가장 큰 명절인 테트(Tết) 기간에 벌어진 대대적인 공세는 전쟁의 흐름을 완전히 뒤바꿔 놓습니다.
그것이 바로, **‘테트 공세(Tết Offensive)’**입니다.

📌 1. 테트 명절, 누구도 예상 못한 총공격
1968년 1월 30일. 베트남 전역은 테트 명절 분위기에 휩싸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새벽,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전국 100개 도시 이상을 동시에 기습 공격합니다.
사이공(호치민시)
후에(Huế)
다낭, 캄란, 까마우…
놀랍게도 그중에는 미국 대사관이 있었습니다.
수도 한복판, 미국의 상징적인 건물이 습격당하며 전 세계에 충격을 줬습니다.
> “전세는 우리가 유리하다”고 말하던 미국 정부는 순식간에 거짓말쟁이가 되었습니다.
📌 2. 전략적으로는 패배? 그러나 심리전은 완승!
군사적으로 보면 테트 공세는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의 실패였습니다.
수많은 병력이 희생되었고
목표 지역 대부분을 점령하지 못한 채 퇴각했습니다.
그러나 이 작전의 진짜 목적은 군사 승리가 아니었습니다.
→ 미국의 국민과 언론, 정치인을 심리적으로 무너뜨리는 것이었죠.
> “이 전쟁은 끝날 기미가 없다.”
“우리가 이기고 있다던 말은 거짓이었다.”
→ 미국 국민들은 더 이상 정부를 믿지 않게 됩니다.

📌 3. 후에 대학살 – 전쟁의 이면
테트 공세 중 북베트남군이 점령한 도시 **후에(Huế)**에서는
약 3주간 도시가 점령되었고, 그 과정에서 수천 명의 민간인이 처형되었습니다.
지식인
공무원
남베트남 정부 협력자
이는 훗날 **‘후에 대학살(Huế Massacre)’**로 불리며,
베트콩과 북베트남 정부의 이면을 드러내는 사건이 됩니다.
📌 4. 월터 크롱카이트의 선언 – 전세를 뒤집은 한 마디
테트 공세 이후, 미국 언론은 정부 발표를 더 이상 믿지 않았습니다.
그 결정적 장면은 CBS의 간판 앵커,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의 발언이었습니다.
> “이 전쟁은 승리할 수 없는 전쟁입니다. 우리는 협상을 통해 빠져나와야 합니다.”
이 보도가 나간 후, 미국 내 반전 여론은 폭발합니다.
→ 린든 B. 존슨 대통령은 재선 도전을 포기하고
→ 민주당 내부도 분열되며, 결국 미국은 철군의 길로 방향을 틀기 시작합니다.

📌 5. 전쟁의 전환점
테트 공세는 미국에게 군사적 패배는 아니었지만, 정치적·심리적 패배였습니다.
전쟁은 아직도 한창이었지만, 그날 이후 미국은 **'언젠가는 철수해야 할 전쟁'**으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 이 공세 하나로 미국의 전쟁 전략은 완전히 뒤집어졌습니다.
✅ 마무리: 전쟁에서 이긴 쪽은 누구인가?
북베트남군과 베트콩은 막대한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세계 여론과 미국 국민의 마음을 흔드는 데 성공했습니다.
이제 전쟁은 총과 포탄이 아니라, 카메라와 TV를 통해 진행되는 시대로 넘어간 것이죠.
📌 다음 편 예고
6편에서는, 미국과 함께 참전한 또 다른 나라, 바로 대한민국의 파병 이야기를 다룹니다.
파병의 배경과 정치적 계산
맹호·백마·청룡 부대의 활약
그리고 지금까지 남아 있는 **한국군의 ‘베트남전 흔적’**과 논란까지,
다음 편에서 확인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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