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은 베트남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글에서의 소모전, 폭발하는 반전 여론, 매일 늘어나는 전사자…
그리고 1968년 테트 공세는 결정적인 경고였습니다.
이후 미국은 전쟁에서 빠져나오기 위한 전략을 준비합니다.
그 전략의 이름은 바로 ‘베트남화(Vietnamization)’, 그리고 이를 공식화한 **닉슨 독트린(Nixon Doctrine)**입니다.
📌 1. 닉슨 대통령의 고민: 손해는 안 보되, 빠져나오자
1969년 취임한 리처드 닉슨 대통령은
“미국 병사들이 다른 나라의 전쟁을 대신해 싸울 이유는 없다”고 선언합니다.
이것이 바로 닉슨 독트린입니다.
> 핵심은 미국의 직접 개입 축소,
대신 동맹국에게 자국 방어 책임 전가.
이를 베트남에 적용한 것이 **‘베트남화 정책(Vietnamization)’**입니다.
→ 남베트남군을 키워서, 미국 없이도 전쟁을 치르게 하자는 전략이었죠.
📌 2. 베트남화 정책의 실제 내용
미군 단계적 철수:
1969년부터 1972년까지
→ 미군 병력 54만 명 → 3만 명 수준까지 감축
남베트남군 훈련 및 무기 지원 강화:
→ 미국은 최신 무기와 전술 훈련을 남베트남군에 집중 지원
전쟁 책임을 남베트남에게 이관:
→ 전투, 행정, 치안 등 전쟁의 모든 부담을 남베트남 정부가 떠안게 됨
하지만 문제는, 남베트남군이 이미 군 내부 부패, 전투 의지 부족, 지휘력 미흡 등의 문제로
미국 없이 장기 전쟁을 감당할 수 없었다는 점이었습니다.
📌 3. 파리 평화 협정 – 종전의 서류상 합의
1973년 1월 27일, 프랑스 파리에서
미국, 남베트남, 북베트남, 베트콩 임시혁명정부 간에 평화 협정이 체결됩니다.
합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미국, 베트남에서 모든 군대 철수
포로 상호 송환
베트남 국민이 자유 선거로 통일 방식 결정
북베트남군은 남베트남 내 주둔 허용(!)
→ 이 협정은 사실상 북베트남에게 유리한 협상이었고,
남베트남 정부는 강하게 반대했지만 미국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였습니다.
📌 4. 미국은 빠지고, 남베트남은 무너지고
파리 협정 이후, 미국은 전쟁을 끝냈다고 선포하고 발을 뺍니다.
그러나 남베트남의 현실은 냉혹했습니다.
미군의 철수와 함께 경제·안보 위기가 심화
북베트남군은 여전히 남부에서 활동을 계속
미국은 군사적 개입을 완전히 중단
결국 남베트남은 혼자 전쟁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에 내몰리게 됩니다.
📌 5. 철수의 대가 – 도덕적 책임은 어디로?
닉슨 행정부는 "베트남에서 빠져나오는 데 성공했다"고 자평했지만,
그 뒤에는 수백만 명의 남베트남 민간인, 군인, 보트피플이 버려졌습니다.
특히, 남베트남 정부는 미국의 약속을 믿고 버텼지만,
→ 미국 의회는 추가 지원을 거부했고
→ 결국 전쟁은 2년 만에 북베트남의 승리로 끝나게 됩니다.
> 파리 평화 협정은 ‘평화’가 아닌,
남베트남의 종말을 예고한 종이 한 장이었습니다.
✅ 마무리: 철수는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미국은 ‘명예로운 철군’을 외쳤지만,
그 결과는 베트남 전체의 공산화, 수백만 명의 난민, 그리고 폐허가 된 나라였습니다.
이 경험은 이후 미국 외교 전략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 **이라크·아프간 전쟁에서 반복된 ‘베트남의 기억’**이 바로 그 증거죠.
📌 다음 편 예고
8편에서는, 전쟁의 마지막 순간을 조명합니다.
사이공 함락,
헬기 루프탑 탈출 작전,
그리고 남베트남의 최후까지
1965년 미국의 상륙부터 1975년 철수까지,
10년 전쟁의 마지막 장을 다루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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