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4월 30일, 베트남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리고 그날, **사이공(현 호치민시)**은 조용히, 그러나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한 시대를 뒤흔든 이 전쟁은, 그 마지막 장면마저 충격적인 이미지로 남아
전 세계의 기억 속에 깊이 각인되었습니다.
오늘은 베트남 전쟁의 마지막 순간, 그리고 사이공 함락의 전모를 따라가 봅니다.

📌 1. 파리 협정 이후, 평화는 오지 않았다
1973년 미국과 북베트남은 파리 평화 협정을 맺고 전쟁을 끝낸다고 발표했습니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습니다.
미국은 철수했지만, 북베트남군은 여전히 남베트남 내에 주둔
남베트남은 미국의 지원 없이 외롭게 전쟁을 이어감
결국 북베트남은 1975년 초, 전면적인 공세를 재개
3월부터 북베트남군은 번개처럼 남하하며, 단 55일 만에 수도 사이공까지 진격합니다.
📌 2. 사이공은 어떻게 무너졌는가?
1975년 4월, 수도 사이공은 공포에 휩싸입니다.
북베트남군이 도심 외곽까지 도달했고
미 대사관에는 탈출을 원하는 사람들로 인산인해
그날의 혼란은 세계 역사에 남을 이미지로 기록됩니다.
바로 헬기 루프탑 탈출 장면.
> 미 대사관 옥상에서 헬기를 타고 철수하는 사람들,
그리고 철조망 너머로 울부짖는 베트남 사람들의 절망…
미국은 ‘오퍼레이션 프리퀀트 윈드(Operation Frequent Wind)’라는 이름의
비상 철수 작전을 실행했고, 단 몇 시간 안에 7,000명 이상이 헬기로 대피했습니다.
그러나 수만 명은 끝내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 3. 남베트남 최후의 대통령, 그리고 항복
남베트남은 이 시기에 대통령이 계속 바뀌는 혼란을 겪었습니다.
응우옌 반 티에우 → 도피
쩐 반 흐엉 → 며칠 만에 사임
즈엉 반 민(Dương Văn Minh) → 전쟁 종료 당일 취임
그리고 4월 30일 오전 10시경, 즈엉 반 민은 라디오를 통해 공식 항복 선언을 합니다.
> “저는 국민들에게 무기를 내려놓고, 피 흘리는 것을 멈춰줄 것을 요청합니다.”
이 한 마디로 베트남 전쟁은 공식 종료되었습니다.
📌 4. 전쟁이 끝나고 시작된 또 다른 고통
전쟁은 끝났지만, 평화는 곧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재교육 수용소: 남베트남군, 경찰, 관료 수십만 명이 체포되어 강제 수용
보트피플(Boat People): 수십만 명이 배를 타고 해외로 탈출 시도 → 많은 인명이 바다에서 희생
재산 몰수, 외교 단절, 대규모 사회 혼란
미국은 남베트남의 종말을 사실상 방조했고, 그 결과 수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나라에서 버림받는 경험을 해야 했습니다.
📌 5. 사이공은 호치민시가 되고
1976년, 북베트남은 남북을 통일하며 베트남 사회주의공화국을 공식 선포합니다.
그리고 수도 사이공은 **‘호치민시(Thành phố Hồ Chí Minh)’**로 이름이 바뀝니다.
그 이름의 변화는 단지 행정적인 것이 아니라,
역사의 승자와 패자, 체제의 전환을 상징하는 상징적 사건이었습니다.
✅ 마무리: 무너진 것은 도시만이 아니었다
사이공이 무너진 날,
무너진 것은 단지 한 도시가 아니었습니다.
한 시대의 이상
자유진영의 희망
그리고 수많은 개인의 삶과 가족
전쟁은 끝났지만, 그 잔해는 여전히 많은 이들의 기억 속에 남아 있습니다.
📌 다음 편 예고
9편에서는, 전쟁 이후의 베트남을 조명합니다.
공산화 이후 베트남 사회는 어떻게 변화했는가?
도이머이 개혁, 베트남 경제 발전,
그리고 전쟁의 후유증을 어떻게 극복해왔는가?
폐허에서 경제 성장국으로,
베트남의 놀라운 변화와 인간적 회복의 여정을 다룹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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